뉴욕, 유니세프(UNICEF) 본부에서 일하는 김새려씨를 만나 그녀의 직장 생활 그리고 한 아이의 엄마와 한 남자의 아내로서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가장 화려한 도시에서 살지만 가장 낮은 곳을 보려고 노력하는 그녀의 B&R 스토리를 들어보자.
Q 유니세프에서 일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기관인지 그리고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요?
유니세프(UNICEF) 는 UN 안에서 어린이 분야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UN 산하기관으로 ‘어린이 권익 증진’을 위해 일하는 곳이에요. 150여개국에 사무실이 있고, 36개국의 선진국에 유니세프 위원회가 있어요. 어린이들의 생존에 관한 권익,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권익, 잘 성장할 수 있는 권익, 좋은 영양과 보건 시설 및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권익, 질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말해요. 전세계의 어린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고 그 환경을 증진하기 위해 일하는 곳이죠. 저는 유니세프 안에서도 파트너쉽(Partnership) 담당 부서에서 일하고 있고,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의 창구 역할을 하면서 부서의 총무와 예산을 담당하고 있어요.
Q 원래 국제 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나요?
꼭 국제 기구라기보다는 어린아이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꿈이었어요. 개발도상국가나 분쟁 국가에 있는 아이들을 돕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자선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유니세프는 자선단체가 아니라 개발과 인도 지원을 하는 단체에요.
개발도상국가 중에서 원조를 받던 국가가 원조하는 국가가 된 최초의 나라가 대한민국이예요. 1994년도까지도 원조를 받던 국가였는데 말이죠. 한국전쟁 이후에 세계로부터 받은 후원과 지원을 생각하면서 받았던 것을 도움이 필요한 다른 나라들에게 돌려주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인 거죠.
Q 엄마로서, 아내로서 일과 가정 생활을 병행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많은 어려움이 있었어요 (웃음). 많은 워킹맘들이 그렇겠지만 자녀를 키우면서 일을 하다보니 아이가 커가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지 못해 많은 부분을 놓치게 되는 것이 힘들었어요.
결혼 초기엔 일과 가정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어서 시행착오도 많았어요. 하지만 그것을 통해 제가 터득한 노하우가 있어요. 바로 ”팀웍과 균형”이예요. 남편과 저 두 사람의 팀웍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려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부부의 팀윅이 좋으려면 서로 이해하고 배려하며 희생하는 부분들이 필요하겠죠. 하지만 팀웍을 잘 맞춰나가다 보면 ‘균형’이 생기게 되요. 일과 가정에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균형말이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면 결국 삐그덕거리게 되요. 요즘은 가끔 일 쪽으로 기울어져 스스로 속상하기도 하고 가족들에게 미안하기도 해요.
Q 뉴욕에 살고 있는데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뉴욕은 멋진 도시인가요?
뉴욕은 다양한 문화, 인종, 음식, 종교 등이 공존하는 도시예요.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를 직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적 혜택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는 곳이죠. 영화에서 보는 것처럼 멋진 풍광도 있지만 동시에 경제적으로 부유한 층과 극심한 빈곤층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해요. 차이나타운에서 걸어 올라가다 보면 소호 옆에 놀리타라는 곳을 지나게 되요. 화려한 가게들과 딱 한 블록만 떨어지면 홈리스들이 박스로 집을 지어서 살고 있죠.
뉴욕 타임즈에 실린 기사 중에 비싼 콘도들이 세워져 가는 브룩클린 주변에 쉘터(Shelter)에 거주하는 극빈층 소녀의 이야기를 읽었던 적이 있어요. 다사니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의 가정을 1년 동안 동행 취재한 시리즈 기사였어요. 다사니라는 이름은 아이의 엄마가 임신했을 때 옆에 가게에서 본 예쁜 물병 브랜드의 이름이었어요. 다사니의 이름부터가 너무나 다른 세상을 암시하는 것이죠. 가질 수 없는 세상에 사는 동경이랄까…
얼마나 가난했던지 엄마는 시에서 심리 치료를 하면 돈을 주기 때문에 돈 때문에 아이들에게 상담을 받게 했어요. 수학 여행비를 내려고요. 한 방에서 새 아빠가 낳은 아이들까지 아이들 몇 명이 함께 지내고 있었죠. 기자는 이렇게 쉘터 안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과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사로 썼어요.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라 이 화려한 뉴욕 땅에도 집이 없는 극빈층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 기사를 보면서 정작 나는 뉴욕의 화려함 만을 쫓고 사는 건 아닌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어요.
나는 정말 많은 것을 가졌는데 내가 그것을 스스로 깨닫고 있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옷을 사더라도, 뭘 먹더라도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는지도 말이예요. 실제적으로 그 사람들을 돕고 싶어하면서도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내 삶을 통해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반성하게 되었죠.
Q 뉴욕에 온지 만 7년이 넘었다고 하셨는데 그동안 힘들었던 일은 없었나요?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요?
싱글로서 혼자 외국에 살았던 적은 있었지만 남편과 아이와 함께 외국에서 살아본 적은 처음이라 힘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엄마로, 아빠로, 직장인으로 뉴욕에서 적응해 나가는 것들이 어려웠죠. 한국에서는 가족, 친척, 친구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남편과 아이가 함께 였지만 외롭고 힘들었어요.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해결해야 했으니까요.
그리고 2008년 미국에 금융 위기가 오고 그것 때문에 남편이 직장을 구하는 것이 생각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남편이 많이 힘들었지만 그래서 또 하나님이 허락하신 새로운 일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요.
음…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따로 없어요. 그냥 버티는 거죠. 대신에 어려움이 그냥 지나가기를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끝이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버티는 거예요. 예를 들어 제가 회사에서 어려운 일들이 있을 때, 그 상황을 피할 길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을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버티는 것이죠. 상관하고 어려운 상황이라면 ‘그만두어야겠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관과의 관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피하지 말고 잘 헤쳐나가는 것. 그것이 버티는 것인 것 같아요. 그럴려면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해요. 남편과 어려운 상황이라면 내가 버려야 할 것과 고쳐야 것들을 깨닫고 양보나 포기를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생각이나 태도가 변화지 않으면 버티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삶 속에서 느끼는 블래싱 앤 레스팅(Blessing & Resting)이 있다면 어떤 것인지요?
유엔(UN) 역시 경쟁 사회다보니 각박해요. 얼마 전 아는 동료가 제게 ‘나는 이제 일에 대해서는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로 했다.’라고 이야기하더라구요. 그 동료는 나보다 더 어려운 위치에서 민감한 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 동료가 말한 것은 ‘일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이 우리 인생의 다가 아니다’라는 거죠. 일이 중요하고 좋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일은 일일 뿐이지 그것이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두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전 그것이 바로 블래싱 앤 레스팅(B&R)의 핵심인 것 같아요.
내 삶의 우선 순위가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아요. 일에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가족과의 관계나 우리 가족이 속한 공동체에 나의 삶에 가치를 둔다면 자연스럽게 B&R이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요?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당장 내일이라도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사회에서의 나는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거든요. 거기에 나의 가치를 둔다면 그 직업과 일이 나에게 없어지는 순간 나의 삶의 의미는 사라지게 되요. 나의 가치를 더 중요한 곳에, 하나님이 주신 사람들에게 둔다면 그 일이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정의할 수 있게 되요.
여가 생활이나 여행 같은 것이 우리의 영혼을 촉촉하게 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서 내가 릴랙싱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센트럴 파크 산책은 순간적인 릴랙싱은 되지만 내가 계속 센트럴 파크에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가치를 결정하거나 B&R의 핵심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Q 어떤 여자를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하는지요?
우선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아름다운 것 같아요.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상을 아예 배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 수는 없겠지만,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장점으로 여기며 감사하고 인정하는 것이 아름다워 보여요
두 번째는 긍정적인 사람들이요. 굉장히 많은 고난과 역경을 겪었음에도 그것을 힘들어 한다기보다 아팠던 기억과 힘들었던 것들을 통해서 성장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현재에 충실한 사람들이요. 지인 중에 롤 모델로 생각했던 여성이 한 분 있어요. 한 분은 본인은 깨어진 가정에서 자랐으나 ‘우리 엄마가 나를 이렇게 키웠지만 나는 엄마를 너무 사랑한다.’라고 말하더라구요. 엄마가 그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해하는 것이죠. 남편이 굉장히 지지해주기 때문에 그런 이해와 회복이 가능한 것 같았어요. 그걸 보면 가족 구성원들의 지지가 있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아름다운 여성이 되는 것 같아요.
Q 앞으로 회사나 가정에서 이루고 싶은 것이 소망이나 꿈이 있다면요?
개발도상국가에 가서 일을 하고 싶어요. 수혜자들을 현장에서 직접 보며 일을 하고 싶어요. 본부가 아니라, 직접적으로 프로그램 수혜자들을 보고 각자 자기 분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돕고 싶어요.
유니세프에서 하고 있는 일의 핵심이 사실 현장에서 일하는 것이예요. 우리 직원이 12,000명인데 그 중 90% 가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만큼 실질적인 일은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죠. 현장을 경험하고 현장에 있는 아이들을 직접 만나고 싶어요. 또 남편이 사진작가인데 개발도상국에서 사진 작업을 하고 싶어하기도 하구요.
Q 지금 일과 직장으로 어려움을 겪는 워킹맘이나 직장 여성들에게 해줄 말이 있다면요?
한국 직장 여성들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은 어려운 부분이 있네요. 저와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국제기구는 여성들에 대한 처우가 한국보다는 좋아요. 그래서 제가 조언이라고 이야기하긴 어렵겠지만, 그래도 일하는 여성들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유엔(UN)은 모두 계약직이어서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기 때문에 재계약에 대한 걱정이 많아요. 그래서 장기적인 비전보다는 당장 내일 일에 대한 고민이 많죠.
그렇지만 지금까지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내가 어떤 일들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라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이 필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 눈 앞에 놓인 것들을 해결하기에 급급하게 되니까요. 일에 끌려가지 않으려면 시간을 갖고 큰 그림을 그려봐야 할 거 같아요.
사실 저는 일을 하든, 일을 하지 않는 엄마든 엄마는 모두 대단한 것 같아요. 주변에서 보면 일을 하다가 그만두고 후회하는 여성들도 있는데, 전 어떤 선택을 하든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더 나은 선택이란 없는 거 같아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은 정말 중요하니까요.
Q 마지막으로 빌드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요?
얼마 전 한국에 출장을 가서 쇼핑을 하려고 이태원과 동대문에 갔는데 모든 가게가 비슷한 옷만 팔고 있더라구요. 음… 빌드는 유행에 민감하지 않는 옷을 만들어주었으면 해요.
무조건 유행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입는 것이 좋은 거 같아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주는 옷이요. 한국에서는 멋을 부린 사람들은 많지만 한국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멋쟁이들은 보기가 어렵더라구요. 외국의 패션 디자이너들이 우리 나라에 오면, 트랜디하긴 하지만 옷차림이 다 비슷하다고 이야기한대요. 그래서 빌드가 여성들의 각자의 아름다움을 돋보이게 해줄 수 있는 유행을 넘어서는 클래식한 옷들을 만들어주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