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섭은 6.25 동란 때 제주도로 피난 왔던 1년 여를 서귀포 변두리 마을 이장 송씨 집에 머물렀다. 1.3평의 골방에 그릇, 수저, 이불을 송씨에게 빌려 가난한 살림을 시작했다. 가족 수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식량으로 온 가족이 바다에 나가 게를 잡거나 해초를 뜯어 끼니를 연명했다고 한다
훗날 이남덕 여사(이중섭 화가의 부인)는 이 때를 ‘힘겨웠지만 가족이 함께 모여 살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회고했다. 남편과 아내, 두명의 아들이 발 뻗고 눕기에도 좁은 단칸방에서 지냈던 이 서귀포 시절을 이중섭은 평생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추억하며 그리워했다. 나중에 가족들이 일본으로 떠나고 홀로 고국에 남아 골방에서 맨밥과 간장으로 끼니를 때우며 그리움에 사무쳐 편지를 쓸 때에도 이 시절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그림으로 전했다.
예전에 방영했던 “결혼의 여신”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있었다.
“제주도에 가면 이중섭과 이중섭 아내가 살던 3평짜리 집이 있습니다. 집이라고 해야 할지 방이라고 해야 할지 너무 좁고 초라해서 도대체 여기서 사람이 어떻게 사나 할 정도로 작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도 들더라구요.”
여기 좁은 방에서 네 식구가 살았다는데…
참 재미있었겠다. 부부는 친했었겠다.
싸워도 금방 화해했었겠다.
지긋지긋하면서도 서로 그리웠겠다.
일본으로 간 아내와 아이들을 그리워하다 간염과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난 비운의 천재 화가 이중섭.
그리운 제주도 풍경이란 그림은 이중섭이 가족들이 일본으로 떠난 다음 제주도에서 살았던 때를 그리워하는 심정을 담아 가족에게 편지로 보낸 그림이다. 이 소박한 그림 한 장에서 아버지의 아들을 향한 사랑과 가족에 대한 애뜻함이 절절히 느껴진다. 자식을 사랑하고 아내를 아끼는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의 이중섭과 그의 그림은 살아가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우리에게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