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시간, 제대로 된 가구 하나 없는 초라한 집에서 작은 불빛에 의지하여 저녁을 먹는 농부들의 모습. 고된 농사일로 주름 가득한 얼굴과 거칠어진 손. 그러나 그들의 식탁에는 추수한 감자와 차가 전부인듯 하다.
등잔에서 나오는 불빛은 겨우 서로의 얼굴과 음식을 비추어줄 뿐이지만 식탁에 앉은 사람 수에 맞춰 차를 따르고 서로에게 감자를 권하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소박한 희망이 느껴진다.
당시에 화가 반 랍파르트는 지저분한 색깔을 사용한 이 그림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고흐는 그때까지 그린 자신의 그림 가운데 이 그림이 최고의 작품이라고 자부했다. 이 작품을 완성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후 여동생에게 “감자를 먹는 농부를 그린 그림이 내 그림을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남을 것이다.”라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자화상’, ‘해바라기’, ‘별이 빛나는 밤’ 등의 세기에 남을 작품을 완성한 고흐가 가장 사랑했던 그림이 바로 이 ‘감자먹는 사람들’이다.
“라파르트가 이 그림을 보고 왜 그렇게 지저분한 빛깔을 사용하냐고 했지. 하지만 나는 더 어둡고 지저분한 빛깔로 그릴 것이다. 그 탁한 빛깔 속에도 얼마나 밝은 빛이 있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나는 이 그림에 진실을 담을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빛나고 있는 이들의 삶의 진실을 담아낼 것이다. 사람들의 주름에 배어있는 깊은 삶과 손과 옷에 묻어있는 흙의 의미를 노래할 것이다.”
들판의 쾨쾨한 퇴비 냄새가 느껴질 수 있게 화려한 색이 아닌 껍질을 벗기지 않은 감자의 색을 사용했던 것은 고흐의 의도였다.
이 세상에 고흐처럼 잘못 알려진 화가도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고흐를 자신의 귀를 자르고 권총으로 자살한 ‘미친 천재 화가’ 정도로만 알고 있으나 그는 일평생 사회적 약자인 노동자, 농부, 직조공이나 광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았다. 그는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그림을 통해 보여주고 싶어했다.
그러고보면 어쩌면 그의 이상행동들은 정확한 자료와 근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이미지가 아닌가 싶다.
“작은 등불 아래서 접시에 담긴 감자를 손으로 먹는 이 사람들을 그리며 나는 그들이 마치 땅을 파는 사람들처럼 보이도록, 그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애썼어. 이 사람들이 먹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노동을 통해 정직하게 번 것임을 말하고 싶었어.”
반 고흐에게 아름다움은 꾸미거나 차려 입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모습, 일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었다.
“나는 사람들이 사물을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기를 원해. 숙녀보다는 농부의 딸이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농부의 딸이 입은 헝겊을 댄 흙 묻은 푸른 웃옷과 치마는 햇빛과 바람에 시달리며 색이 바래 섬세한 분위기를 띠지. 그런 시골 처녀가 숙녀의 옷차림을 하면 그녀 안의 진정한 무언가가 상실된다고 생각해. 농부는 밭에서 일하는 면 옷차림일 때가 주일날 정장을 차려입고 교회를 갈 때보다 더 아름답다고 생각해.”
일반 대중들에게는 덜 알려진 그림이지만 고흐에게는 가장 애정이 가는 작품이었던 ‘감자먹는 사람들’을 통해 진정한 아름다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겉으로 그럴듯해 보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가 아니라 노동의 신성함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들을 귀하게 보는 고흐와 같은 눈이 있다면 이 세상에는 아직 B&R이 있는게 아닐까…
사진 및 내용 참조:
반 고흐, 삶을 그리다 : 작가 라영환, 출판 가이드포스트